잔소리처럼 들렸던 부모의 말, 시간이 지나서야 보이는 사랑

 

숲속에서 함께 앉아 빛을 바라보는 부모와 아이의 모습

살다 보면 그 순간에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의미가 보이는 일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래전 아들과 나눴던 짧은 대화가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빠가 집에 없어서 좋은 점이 뭐야?”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잔소리 안 들어서 좋지.”

순간 저도 웃었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잔소리를 했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자주 하던 말들이 있었습니다.

  • 방에 들어가면 옷은 아무 데나 두지 마라.

  • 책상 위는 조금 정리해라.

  • 씻고 자라.

  • 일찍 자라.

  • 옷 좀 깨끗하게 입어라.

당시의 저는 그것을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해야 할 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다르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리는 이유

시간이 지나고 나니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보입니다. 저는 옷이 중요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상이 중요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아이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금 더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고, 조금 더 좋은 습관을 가지면 좋겠고, 나중에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그저 반복되는 말로 들렸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걱정은 간섭처럼 느껴졌고, 조언은 부담처럼 들렸으며, 반복되는 말은 잔소리처럼 들리곤 했습니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보이는 것들

젊었을 때는 주로 말에 집중합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 내가 기분이 나빴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말 뒤에 있었던 마음입니다.

물론 모든 말이 사랑에서 나온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상처가 되는 말도 있고, 함부로 던져지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표현은 서툴렀어도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던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그때 그 사람은 나를 괴롭히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걱정하고 있었구나.” “사랑하고 있었구나.”

이런 깨달음은 대개 세월이 지나서 찾아옵니다.

사랑은 꼭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오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따뜻한 말과 감동적인 장면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삶의 사랑은 생각보다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 늦은 밤 귀가할 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 감기에 걸렸을 때 건네는 한마디.

  • 밥은 먹었는지 묻는 질문.

  • 그리고 때로는 잔소리처럼 들리는 걱정의 말들.

그 순간에는 귀찮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은 언제나 멋진 문장으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투박한 걱정으로, 때로는 서툰 관심으로, 때로는 반복되는 잔소리처럼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경을 다시 읽게 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성경의 이야기들도 조금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경을 읽을 때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먼저 보았습니다.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잘못한 사람인지, 누가 칭찬받아야 하고, 누가 꾸중을 들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도 그렇습니다.

집을 떠났던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쁘게 맞이하며 잔치를 엽니다. 하지만 집에 남아 있던 큰아들은 그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큰아들의 마음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성실하게 집을 지킨 사람은 자신인데,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동생을 위해 잔치가 열렸으니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큰아들은 상황을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 큰아들은 계산을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돌아온 생명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일들도 다시 보입니다. 부모는 마음을 담아 말하지만, 자녀는 그 말을 간섭으로 듣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보고 있지만, 자녀는 부모의 말투와 반복되는 표현을 먼저 듣습니다.

물론 부모의 마음이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도 실수하고, 부모의 말이 상처가 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순간에는 겉으로 들린 말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뒤늦게 보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마음

성경은 우리에게 보편적인 규범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 형과 동생, 어른과 아이, 밤과 낮, 기다림과 돌아옴, 사랑과 용서.

이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장면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때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하는 그림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 로마서 1:20

이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세상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작은 대화, 누군가의 걱정 어린 말, 기다리는 마음, 돌아온 사람을 맞이하는 마음. 그 모든 것들 안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알려주는 것

세월은 참 신기합니다.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마음을 이해하게 만들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만듭니다.

문득 오래전 아들과 나누었던 그 대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때의 아이는 아이의 자리에서 들었고, 저는 저의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같은 일을 경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에는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안에 담겨 있던 마음을 알아보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도 어쩌면 우리에게 전혀 낯선 세계만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삶을 다시 보게 하는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것은 같지만, 보는 눈이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면, 그 말 자체보다 그 뒤에 있었던 마음을 한 번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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