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안다는 것과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
하나님과 성경을 전하는 지인의 동영상을 보면서 생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 6장의 말씀을 살펴보다가 선택과 유기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같은 말씀을 듣고도 누군가는 깨닫고 누군가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 그 차이를 우리는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요. 말씀을 이해한다는 일과, 한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일이 함께 마음에 남았습니다.
선택과 유기 앞에서
이사야 6장에는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도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 전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음이 둔해지고 귀와 눈이 닫히는 말씀 뒤에는 성읍이 황폐해질 때까지 이어지는 심판이 놓여 있습니다. 읽을 때마다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 말씀 앞에서는 사람이 많이 듣고 열심히 배우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에 머무르기 어렵습니다. 말씀을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말씀을 읽으며 제가 이해해 온 선택과 유기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선택은 사람이 남보다 낫거나 무엇을 잘해서 얻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받을 자를 택하시는 일입니다. 유기 역시 죄 없는 사람을 억지로 악하게 만드신다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그대로 두시며,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누가 선택받았고 누가 유기되었는지 제가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성경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로 한 사람의 마지막을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었다면 그것도 받은 은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내세울 것은 없습니다. 선택과 유기를 생각하던 마음이, 어느새 성경을 안다고 믿었던 오래전의 제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믿었던 시간
20여 년 전에는 성경에 대해 제법 많이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설교를 듣고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제가 알고 있는 말씀과 이해를 기준으로 분석하고 판단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 지식이 가득하다고 여겼으니,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지를 조금씩 깨닫기까지는 그 뒤로도 10여 년이 더 걸렸습니다.
자기 생각과 결정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사람을 보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몇 해 전에는 그런 제 모습을 돌아보며 “앞으로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라고 적었습니다.
이사야 6장의 앞부분에서 하나님을 뵌 이사야는 먼저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죄가 사해졌다는 말씀을 들은 뒤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백성에게 전할 말씀을 받기 전에 자신이 드러나고 은혜를 입는 그 순서가 마음에 남습니다.
제 무지를 조금이나마 보게 된 일도 은혜라고 여깁니다. 알고 있다고 믿던 것이 하나씩 내려놓아지는 동안, 다른 사람 앞에서 내세우던 근거들도 힘을 잃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받은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저 자신도 다 알지 못합니다.
돌아가신 뒤에도 알아가는 아버지
누군가를 안다는 일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아버지를 떠올릴 때에도 느낍니다.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마음이 넓고 따뜻하시며, 가족과 집안사람들을 편견 없이 돌보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들인 제가 보아 온 모습입니다. 어머니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형제자매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모두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사람을 오래 곁에서 보았어도 각자 만난 모습은 조금씩 다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어서도, 저는 아버지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함께 보낼 시간은 더 이상 없는데, 살아가는 동안 예전에는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이 제 안에서 다시 보였습니다.
가족 한 사람을 안다는 일도 이렇게 오래 걸립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 배운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그분의 마음까지 다 헤아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읽고 배우는 일은 지금도 소중합니다. 다만 배운 말들로 하나님과 사람을 너무 일찍 정리해 버렸던 제 모습도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아직 알아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운동장에서 자기 아이를 알아보는 눈
아버지를 알아가는 아들로 살다가, 저도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자식의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마음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학교 운동장에 수많은 아이가 모여 율동하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부모는 뒷모습만 보고도 자기 아이를 찾아냅니다. 키가 가장 크거나 동작을 가장 잘해서 알아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이를 알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잘못하면 부모도 속이 상합니다. 걱정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며, 때로는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애를 태웁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까지 지금의 잘못 하나로 끝내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모두 말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쉽게 꺼내지 못할 때가 있고, 제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제가 만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시간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을 떠올리면, 그 사람에 대해 내리려던 결론 앞에서 조금 더 머물게 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삶으로 알아가는 일
예수님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 익숙한 이름 앞에, 제가 자식으로 살아온 시간과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이 겹쳐집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를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사랑한다면서 제 뜻을 앞세울 수 있는 아버지입니다. 그래도 자녀를 생각하며 기다리고 걱정하고 기도하는 마음은, 성경에서 만나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게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과 이 땅의 가족을 함께 생각하다 보면 이런 물음도 생깁니다. 우리에게 결혼과 자녀라는 관계가 주어진 까닭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삶으로 조금이나마 알아가게 하시는 뜻도 있지 않을까요.
성경이 그 이유를 그렇게 설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게 주어진 관계들을 돌아보며 품게 되는 생각입니다. 자녀에게 마음이 가는 일을 겪으며, 오래 읽어 온 말씀의 어떤 부분이 뒤늦게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을 전하는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바르지 않다고 여기는 설명을 들을 때면 안타깝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했던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여전히 기대하는 마음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각의 출발이 되었던 지인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과 성경을 바르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다 알지 못하는 그의 고민과 믿음의 시간이 그 영상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전하는지 살피는 일은 필요합니다. 설명이 맞는지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한 사람의 말과 현재 모습으로 그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까지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저는 여전히 아버지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오래 읽어 온 성경 앞에서도 그런 사람으로 서 있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람에게도 제가 알지 못하는 시간이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으로요.
참고자료
참고자료 최종 확인일: 2026년 10월 4일
- Pilgrim, 『눈을 감고 따르는』: 「내가 늘 옳았던 시절」(2022.07.26), 「조금씩 알아가는 아버지」(2023.08.30), 「그분의 눈에는」(2024.09.17).
- 대한성서공회 — 이사야의 고백과 소명,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 — 「개역개정 이사야 6장」
- 대한성서공회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드리는 기도. — 「개역개정 마태복음 6장 9절」
- 대한성서공회 — 부활 때의 혼인에 관한 말씀. — 「개역개정 마태복음 22장 30절」
- 정통장로교회(OPC)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5·7·8항. 은혜에 따른 선택, 죄에 대한 심판, 이 교리를 대하는 겸손에 관한 개념 확인. —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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