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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는 이유

 

도심 카페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삶을 성찰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

같은 사람을 두고도 누군가는 답답해하고, 누군가는 안타까워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한 것은 아닐까.’

살다 보면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젊었을 때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가 먼저 보였습니다. 

왜 저렇게 살까.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될 텐데.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달라질 텐데.

알려주고 싶었고, 붙잡아 주고 싶었고, 더 나은 길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관심이었고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마음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잘되기를 바라며,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기를 바라는 것도 사랑의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 조금씩 여백이 생겼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보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가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조부모의 기다림

어린 부모는 자녀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습관을 가르치고, 위험한 길로 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말합니다. 부모에게는 그것이 책임이며 사랑입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같은 말이 간섭이나 통제, 잔소리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주를 조금 더 넓게 품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해도 기다려 주고, 부족한 것보다 잘한 것을 먼저 발견해 박수를 쳐 줍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이라 믿어 줍니다.

부모와 조부모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책임의 무게와 거리가 다르니 대하는 방식도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무엇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 보며 체험으로 알게 된 것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 걱정을 오래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 억지로 바꾸어 놓은 것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시간과 길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같은 집에서 자라도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자녀들은 저마다 다른 성향과 기질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같은 집에서 자라도 서로 다릅니다. 한 아이에게 통했던 말이 다른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쉬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배우고, 누군가는 천천히 돌아갑니다.

누군가는 몇 번 넘어지고도 일어나지만, 누군가는 한 번의 상처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더디고 뒤처진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반드시 실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자기 몫의 씨름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지금은 가끔 이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겠지.’

그 사람이 어떤 어린 시절을 지나왔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어떤 말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어떤 밤을 홀로 견뎠는지, 몇 번이나 자신을 미워했는지,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썼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살다 보니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쉽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같은 모습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말합니다

술로 인해 가정과 삶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가족이 저렇게 힘든데 왜 술을 끊지 못하지?” 

“의지가 있다면 끊어야지.” 

“신앙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 말에는 안타까움과 책임을 일깨우려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멈춰야 한다는 판단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밉고 괴로울까.” 

“우리는 그 사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모르잖아.”

이 말은 어떤 사람에게 방관이나 믿음 없는 온정주의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반응 속에는 각자가 걸어온 삶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는 책임과 결단을 배워 온 자리에서 말하고, 누구는 인간의 연약함과 질병을 가까이에서 보아 온 자리에서 말합니다. 누구는 확신이 필요한 여정을 걷고 있고, 누구는 확신보다 모름을 인정하는 자리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자신이 지나온 만큼 보고, 자신이 아는 언어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분별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알아볼 수 있고, 위험한 길에서는 멈추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내가 내린 판단으로 한 사람의 존재와 삶 전체를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판단과 구분은 내 안에서 하되, 그 사람의 마지막 자리까지 내가 결정하려 들지는 않는 것. 그것이 세월이 가르쳐 준 조심스러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도 사람을 고치는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신앙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알려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는 알고 있고, 상대는 아직 모르고 있다고 여깁니다.

나는 옳은 길에 들어섰고, 상대는 잘못된 자리에 있으니 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말이라 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낮은 곳에 두고 베푸는 시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사람들을 돌아보면 그들 역시 자신의 옳음과 선을 붙들고 살아가다가 그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고, 겪고, 깨닫는 여정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강함과 정답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두려움과 실패, 고집과 도망, 넘어짐과 기다림 속에서도 일하셨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그 여정의 어느 자리를 걷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하고 가르치는 자리에서 자기 모습을 보게 되고, 누군가는 실패와 침묵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아 갑니다.

누군가는 확신을 통해, 누군가는 긴 의심과 씨름을 통해 그분과 관계를 쌓아 갑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일을 통해 무엇이 드러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도심 광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는 중년 남성의 모습

길과 방법과 사랑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사랑하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옳은 것을 알려 주고, 잘못을 바로잡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살아 보니 내가 알고 있던 길이 늘 그 사람의 길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좋다고 믿었던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기다림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닿는지 다 알지 못합니다.

내가 한 말이 누구에게 어떻게 남는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었던 시간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길은 그분에게 있습니다. 사람을 이끌어 가는 방법도 그분에게 있습니다. 기다림과 사랑의 근원도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거나 완성하여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그분 안에서 오늘을 살아갈 뿐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답답해하고, 판단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걷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곁에 머물고, 나 역시 알지 못하는 내 삶을 하루씩 살아갑니다.

그러는 동안 그분의 것이 내 삶 어딘가에서 조금 새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한마디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준 짧은 시간에서, 잘못을 인정한 모습에서, 판단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어 준 순간에서, 그분의 사랑이 아주 조금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것이 언제였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설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을 지나며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함께 걷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설명하고 교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오래 멈춰 섭니다.

누군가는 바른길처럼 보이는 곳을 걷고, 누군가는 한참을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의 길이 어디에서 무엇과 만나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나의 길조차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여정을 쉽게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보다, 같은 사람으로 곁에 서 있으려 합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부족함도 감추지 않으며, 서로의 길을 대신 결정하지 않은 채 함께 걷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어진 삶은 우리가 모두 이해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지고, 사람은 되어 가며, 그분은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길은 그분에게 있습니다.
사람을 이끌어 가는 방법도 그분에게 있습니다.
기다림과 사랑의 근원도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서툰 삶을 지나 세상 어딘가로 조금씩 흘러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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